대부분의 직장인이 그렇듯 나는 일상에 너무 찌들어 사소한 기쁨과 즐거움을 잊고 있었습니다. 나이 들어가는 부모님께 징징거리는 게 일상이 되어갈 무렵, 아빠는 제게 책을 한 권 선물했습니다. 책 읽을 시간이 어디 있냐며 틱틱대던 못난 딸은 일주일이 지나고서야 첫 장을 펼쳐보았습니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아빠는 편지를 쓰듯 군데군데 소제목마다 참 정성스럽게도 형광펜을 쳐두었습니다. 그런 아빠의 마음에 대고 짜증을 냈던 게 미안해 눈물이 났습니다.

‘인생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상처받지 않을 것’
‘진짜 나 자신을 대면할 것’

에세이는 아빠의 마음처럼 위로로 가득했습니다. '다들 알아서 행복할 것' 이라는 소제목 옆에 아빠는 “함께 행복을 만들어 보자”며 휴가 일정을 적은 메모지를 붙여두었습니다. 아빠와 함께한 행복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3월 15일, 우리는 일본 후쿠오카로 떠났습니다. 23년만에 아빠와 함께하는 일본 여행이었습니다. 일상과 동떨어진 곳에 와서야 겨우 행복하다고 말하는 나를 아빠는 완벽한 어른의 모습으로 묵묵히 응원했습니다.

글씨도 작은 책을 한 장씩 읽어가며 나를 위로하고자 한 아빠의 마음은, 그리고 책에 가득한 형광펜 자국은 지금도 힘들 때마다 나를 미소 짓게 합니다.

아빠, 나는 이제 백화점에서 돈을 펑펑 쓰지 않아도, 5성급 호텔과 해외여행을 예약하지 않아도, 아빠와 손세차를 하며 땀을 흘리고 엄마가 해주는 비빔국수를 먹는 것만으로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어요.

항상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합니다. 오래 오래 제 곁에 있어주세요.